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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설

[칼럼] [기획] 건축사로 살 만합니까?
2018-08-07 10:01:20  |  아키타임즈 

 

※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이미지이며, 뉴스 내용과 무관합니다.

 

 

건축사가 살아야 도시도 행복할 수 있다 (1) 

 

김정관 건축사 l 도반 건축사사무소

 

 

 

들어가며 

 

건축사 자격증으로 우리 삶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설계를 업으로 선택한지 35년이 지나고 있다. 건축사 자격증만 취득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박봉의 건축사보 생활을 견뎌주었던 식구들이 아직도 고생 중이다. 건축사보 없이 건축사 혼자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동료들이 자꾸 늘고 있다. 

 

지금의 상호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던 2000, 보관하고 있는 계약서를 보니 기가 막힌다. 2018년인 지금, 설계대가는 20년 전보다 못한데 사무실 유지를 위한 비용과 행정 처리를 위한 도서 작성의 양은 몇 곱절이 늘었는지 모른다. 업무 건수 대비 건축사 수는 사무소 유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건축사라는 직업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별 문제가 없는 것일까? 건축물 관련 재난이 생길 때마다 책임자 처벌에 건축사를 앞세운다. 거기다 덧붙여서 행정관련 법령만 강화시킨다고 재난이 예방되고, 각종 심의와 평가만 만들어 적용하면 온전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건축물을 짓기 위해 기획하는 시점부터 허무는 멸실 단계까지, 소위 건축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일을 책임지는 건축사가 고사(枯死)되어 가고 있다. 이 나라의 건축을 걱정해서 출범한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있으면 뭘 하는가? 건축물을 책임지는 최일선의 건축사들이 다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전문자격인 건축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건축물과 관련된 재난에 의한 불행을 막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집에서 누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세 번에 걸쳐 연재할 글은 건축사로서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건축사법이라는 법령으로 인정하는 건축사라는 전문직이 실낱같은 호흡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알리고 우리 협회를 통한 자구책을 3회에 걸쳐 제시해보고자 한다.

     

  

건축사로 살아가기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으며 어지간해서는 그 속도를 따라 잡기가 어렵다. 우리 업계 경기는 침체나 상승이 아니라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전문직이 직업의 특권이라고 했던 시절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본 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니 세상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건축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따져보지만 우리 업역은 다리 잘리고 몸통만 남았는지, 몸통은 없고 팔다리만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처지이다. 집을 지으려면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건축사를 찾아서 설계를 하는 것이다. 건축사의 역할은 건축주를 대신해서 집 짓는 과정을 진행하는 일인데 건축행정대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축 건축물의 대부분이 전문 시행사에 의해 대형건축물이나 단지로 지어지다보니 회원들의 한 사람당 건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축사 숫자에 비해 건축물의 건수가 줄다보니 설계를 수주할 수 있는 기회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협회에서는 회원들에게 설계비 덤핑을 하지 말자며 호소해 보지만 수주에 목이 타는 회원들의 처지에서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제대로 일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 설계비를 받을 수 있다면 건축사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당당할까?

     

  

이 시대의 건축사는? 

 

이 시대의 모든 분야가 특정한 전문 업무로 한정해서 일하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사회의 각 분야가 융합이라는 대명제에서 서로 섞여 특정한 성격을 지속하기 어렵게 변해가고 있다. 자동차는 이미 기계가 아니라 전자제품이 되어가고 있으며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을 통합 관리하는 기기가 되었다. 대학 교육도 융합 개념으로 교육 체제가 수시로 바뀌어서 전공학과가 모호하게 변하고 있다. 

 

설계시장도 토목, 전기와 소방 영역은 별도 계약으로 건축사의 관리권 밖이 되어 버렸고, 구조 분야도 독립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축설계의 업무 계약이 분야별로 건축주와 직접 이루어지면 건축사가 통합해서 관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건축물의 설계에서 관리주체가 건축사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업무량은 줄어들고 책임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건축사가 책임은 떠안으면서 건축부분 외의 협력 업무를 총괄할 위치를 잃어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건축허가를 처리하거나 감리업무를 수행하면서 각 분야를 취합하고 조정하는 일을 건축사가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설계 업무의 주계약자는 건축사가 되어야만 각 분야를 통합하여 관리할 위치가 확보된다. 집을 짓는 통합관리자로서 건축사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니 책임은 그대로인데 역할은 미미해지는 현실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현재의 건축사로서 부여된 실제 정체성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건축사의 역할이 혹시 건축허가를 받고 준공처리를 하는 건축행정대행자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건축물에 관한한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리하는 전문가에서 고작 행정 처리를 도맡아서 하는 역할이라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하나의 사례를 보면, ‘하우빌드라는 회사로부터 시작된 건축플랫폼 업체가 난무하고 있다. 그들의 일은 건축사와 시공자를 선정하고 설계와 시공까지 관리하는 건축주 대행 업무이다. PM을 자처하는 건축플랫폼 업체들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그들의 영역으로 이미 굳힌 실정이다. 건축사는 건축플랫폼 업체의 소속사처럼 위치해 하위개념으로 참여하고 있다.

     

  

건축사의 업역 돌아보기 

 

지난 몇 년간 협회에서는 온갖 힘을 다해 소규모건축물의 감리업무를 설계자와 분리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법제화 과정에서 설계자가 감리를 하는 것이 옳은데 왜 그렇게 하느냐는 저항이 만만찮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의 영향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감리업무 수행과 대가가 지불되는 업무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법제화된 감리 범위가 너무 한정적이기에 상주감리 이외의 모든 건축물로 확대시키는 노력을 협회가 앞장서서 해야 할 것이다. 감리업무가 설계자와 분리되면서 시공자는 물론 건축주도 관여할 수 없게 되니 현장에서 정상적으로 감리업무가 수행되고 있다. 감리업무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좀 더 충실한 설계도서 작성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계대가의 현실화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또한 회원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협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천정부지로 오른 지가와 공사비를 생각하면 설계업무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이 중차대하다. 그런데 20년 전보다 못한 설계대가로 어떻게 집을 짓는데 필요한 충분한 설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직원의 고용유지도 어려운 설계대가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설계업무가 가능하기나 할까?  

 

설계비는 건축주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고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애써야 하는 작업시간을 얻기 위한 비용이다. 설계비는 턱없이 부족한데 건축주가 원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한 설계 작업을 기대한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닌가? 출혈경쟁으로 책정되는 설계대가가 만들어내는 설계도서를 믿고 집을 짓는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저가의 설계비로 최고의 설계를 하겠다는 건축사를 믿고 일을 맡기는 건축주와 사회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행정 첨부도서 수준의 설계도서로 허가와 준공처리만 잘 하는 것으로 건축사의 능력을 가른다. 건축사의 업역이 건축행정만 잘 처리하면 그만인 일인가? 어떻게 지어야 좋은 건축물인지 고민하는 일은 누가 해야 하는가?  

 

건축사의 업역은 건축물을 지으려는 건축주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모든 업무를 이른다. 건축플랫폼업체의 하수인이 되고 허가와 준공을 잘 처리하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지금의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건축사라는 전문직의 정체성을 되찾고, 해야 할 일의 비중만큼 업무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축설계 업무대가는 건축사라는 직업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현실적인 업무대가를 정부가 고시하고 법으로 보호해 주어야만 고사되어가고 있는 이 직업의 생명줄을 유지할 수 있다. 나라가, 이 사회가 건축사라는 국가자격증이 필요하다면. 

 

 

출처 : 건축사신문  http://www.archinews.net/?doc=news/read.htm&ns_id=1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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