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전포동 카페거리에 개관한 부산커피박물관
부산 전포동은 과거 철물, 공구상가가 밀집되어있다가 낙후된 이후 개성 있는 카페들이 하나씩 문을 열며 ‘전포카페거리’라는 부산의 대표 명소로 자리 잡았다. 대형 건축물이 아니라 소규모 카페 운영을 통해 사람과 문화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이루어낸 대표적인 골목 상권이다. 2017년 미국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명소 52곳 가운데 하나에 이름을 올리면서 문화관광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도시 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전포카페거리에 사람과 문화를 이을 매개체, ‘부산커피박물관(관장 김동규)’이 문을 열었다.
▲커피박물관 내부
소규모 상점으로 이루어진 상권의 경우 지역 커뮤니케이션과 상인들 간의 유대관계 등이 상권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중심에 커피박물관의 개관이 갖는 의미를 가장 먼저 물었다.
“처음에 제가 시작했을 때는 큰 뜻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포카페거리 문정호 상인회장님께서 저희 집에 놀러오셨다가 1층에 디스플레이 된 골동품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하셨죠. 그 인연을 시작으로 현재 박물관의 부지를 무상 임대, 인테리어도 지원, 유지 관리비까지 지원해주고 계십니다. 도시 재생이 이루어진 지역에 문화가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고, 커피박물관이 문화의 장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주셔서 오늘날 이렇게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커피박물관은 사람과 문화를 이끄는 소통의 창구로 문을 열었다. 김 관장은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같은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고. 커피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통해 언제든 편하게 오갈 수 있는 휴식처같은 공간이 박물관이 지향하는 목표다. 부산 시민들뿐만 아니라 박물관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는 여행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부산관광지도를 관내에 배치해두었다.
▲커피박물관 전경
▲1층에는 카페 랜드마크9, 소품샵이 있고 2층에 커피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부산커피박물관(관장 김동규)은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박물관의 건물 구조, 인테리어 등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실제로 큐레이터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김 관장은 부산커피박물관은 박물관의 기본 구성 요소를 깨트린 공간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조명은 백열등과 할로겐을 함께 사용해야 자연광이 연출됩니다. 또 벽면은 화이트 칠을 해서 시선 분산이 되면 안 됩니다. 턱이 있어도 안 되고요. 그런데 커피박물관은 그러한 기본 구성 요소를 모두 깨트렸죠. 문 회장님께서도 이 공간이 박물관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면 이야기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고민 끝에 그대로 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꿈꾸던 박물관은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보러 올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어느 누구라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공간 말이죠. 그런데 일반인들은 갤러리나 박물관을 가면 문 열고 한 발자국 들어가기가 힘들죠. 건물의 특성상 위엄이 있다는 생각과 비싼 입장료 때문이죠. 그건 제가 생각한 박물관의 기능과 가치와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과감히 형식에서 탈피해 지금의 박물관을 모습을 살렸습니다.”
커피박물관에 배치되어있는 전시 물품은 김 관장이 6년간 유럽 전역과 미국을 돌며 수집한 결과물이다. 처음 골동품 수집은 16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아시아권 물품부터 수집하다가 유럽으로 넘어가서는 다양한 기물이 많은 커피 물품으로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 내에 전시 물품은 유리 벽으로 막아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커피박물관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함에 따라 전시 물품도 인위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관람객들의 동선 등을 고려하여 자유롭게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품들은 모두 오래된, 하나 하나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뭐든지 오래되면 사람들이 쉽게 버리잖아요. 저는 쉽게 버려지는 것들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물건 하나에도 추억이 있는데 쉽게 버릴 수 없다보니 하나씩 모아서 지금의 커피 박물관이 생겨나게 되었죠. 지금도 골동품은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이 지니고 있는 추억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낭만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그 낭만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죠."
▲관내에 배치되어 있는 커피 물품들
겉보기에도 박물관이라는 안내판이 없다면 단순히 카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커피박물관은 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건축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게 커피박물관만의 정체성이자 보다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문화로 소통할 수 있는 메리트가 되고 있다.
“커피박물관은 총 세 개의 건물이 한 데 어우러져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박물관이라는 이미지가 곧바로 연상되지 않지만, 그러한 고정관념을 탈피하였기에 많은 분들께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주고 계십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 중에 지하철 투어를 하시는 어르신 분들도 계십니다. 만약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박물관의 딱딱한 모습 그대로였다면 어르신들께서도 선뜻 마음 편하게 발을 들이기 힘드셨을 겁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카페 느낌 그대로라 부담 없이 우리 동네 사랑방 들르듯이 찾아오시는 거죠. 사진 찍기도 좋고요. 대신 박물관 내의 바닥은 옛 건물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두었습니다. 오래된 향수와 현재의 새로운 변화가 함께 공존한달까요."
내 이웃에게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 좋은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야 말로 좋은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관장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에도 그러한 이유가 내재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보통 평일에는 150명, 주말에는 300명이 방문합니다. 만약 입장료를 받았으면 관람객이 10분이 1도 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외국의 유명 박물관은 높은 입장료는 물론 복장에도 규제가 있을 정도로 박물관 입장이 엄격하죠. 하지만 저는 그런 형식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음료를 마시며 관람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간으로 개방해두었습니다.”
현재 커피박물관은 부산시에서 도슨트 지원을 받지 않고 관내 운영과 설명 모두 김 관장이 전담하고 있다. 커피박물관의 개관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물품을 관람하며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 구청에서 운영하는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인데, 국민의 혈세를 이용하는 것은 박물관의 개관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꼽힐 정도로 도시재생의 옳은 예가 되고 있는 전포카페거리, 그 속에 자리한 커피박물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물었다.
"전포카페거리는 실제로 공구상가가 밀집되어있던 곳입니다. 현재는 90% 이상이 사라졌는데 남은 곳이라도 기록으로 남겨 과거의 상점 역사를 알릴 수 있도록 구청에 제안 중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현존하는 우리의 추억을 잊지 않고 살리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죠. 전포카페거리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도시재생사업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면서 오래된 건물과 신축 건물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급변할수록 우리의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도 빠르고 단순하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여 일상은 더욱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놓치고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다보니 과거의 무수한 과정들은 모두 잊히고 있다. 현재의 삶을 맞이하기까지 지나쳐온 과거, 그 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커피박물관에서 만났다.